재개발 조합장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기소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조합장 지위가 법적으로 ‘무효’였다면 처벌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가 ‘왜’ 조합장이 아니게 되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합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조합은 존재하지만 선임 절차에 하자가 있었던 것인지에 따라 법의 판단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서로 다른 전제를 전제로 한 두 가지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먼저 대법원 2014.5.22. 선고 2012도7190 전원합의체 판결은 조합 자체의 성립이 부정된 경우를 다룬다. 재개발조합은 관계 법령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를 갖추어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은 후에 등기함으로써 성립하며, 이러한 인가처분은 조합에 정비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행정주체(공법인)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종의 설권적 처분의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만약 조합 설립인가 처분 자체가 무효라면, 법적으로는 처음부터 조합이라는 조직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조직에는 법이 정한 ‘조합임원’도 있을 수 없기에, 그 조직의 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시정비법 위반죄의 주체인 조합임원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즉, 형벌을 가할 대상이라는 자격의 전제가 되는‘조합’자체가 사라졌으므로 처벌의 근거도 함께 사라진다는 논리이다.
반면 대법원 2024.9.13. 선고 2023도16588 판결은 전혀 다른 상황을 전제로 한다.
조합 자체는 적법하게 성립하여 운영되고 있지만, 조합장을 선출한 총회 결의가 사후에 무효로 확정된 경우이다. 이 경우 대법원은 비록 선출 과정에 하자가 있어 사후적으로 지위가 부정되더라도, 그 전까지 실제로 조합장의 권한을 행사하며 사업을 이끌어왔다면 도시정비법이 정한 정보공개 의무를 지는 ‘조합임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정비사업의 막대한 자금을 운영하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사후에 밝혀진 선출 절차의 무효를 핑계로 형사책임을 피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나중에 선임 의결이 무효가 되더라도 이미 성립한 범죄는 소급하여 부정되지 않는다.
실무에서는 이 구분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총회 결의가 무효라는 사정만으로 형사책임까지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조합설립 단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그 영향이 훨씬 근본적인 수준까지 미친다.
결국 같은‘무효’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그 무효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따라 책임의 성립 여부는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밖에 없다.
한편 2024년 판결은 정보공개의 실무적 한계에 대해서도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조합임원에게 공개 의무가 있다고 해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서류를 만들어내서 보여줄 의무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서류나 관련 자료가 실제로 작성되어 존재한 적이 없다면 이를 공개하지 않았더라도 처벌할 수 없으며, 단순히 매 분기 통지 의무가 있다는 규정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서류의 작성 의무까지 강제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조합원이 서류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 요청 당시 현존하지 않는 서류라면 요청 이후 15일 이내에 서류가 완성되었더라도 그 거부 행위를 죄로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 자에게 책임을 묻되, 그 책임의 범위는 법이 정한‘현존하는 서류’의 테두리 안으로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법원의 신중한 법 해석을 보여준다.
문선희 /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