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원 업무대행계약’ 약정 해지 사유 없어도 ‘신뢰 파탄’시 해지 가능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 내 집을 마련하는 구조이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실제 업무는 업무대행사에 의존하게 된다.양자의 관계는 사업 초기부터 청산까지 이어지는 ‘계속적 위임 계약’의 성격을 띠며, 상호 간의 두터운 신뢰가 필수적이다.하지만 사업 과정에서 추가 분담금 발생, 사업지연, 비리의혹 등이 불거지면 조합은 업무대행사와의 계약을 해지하려 하고, 업무대행사는 계약서상의 해지 절차 위반과 미지급 수수료를 주장하며 맞서게 된다.업무대행계약 내용 중 해지 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별도의 해지 절차를 규정한 경우, 해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신뢰 관계의 파탄이라는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최근 대법원 판결(2025다219495)은‘계약상 해지 사유가 없더라도 신뢰관계가 파탄 났다면 해지가 가능한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이 사건의 피고인 지역주택조합은 업무대행사인 원고가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하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원고는 “계약서에 정해진 해지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고, 30일간의 시정 기간을 주는 절차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해지는 무효”라며 업무대행자의 지위 확인과 미지급 수수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제1심(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21가합101821)은 조합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민법 제689조의 임의해지권은 당사자 약정으로 제한할 수 있으며, 이 사건 계약은 해지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보았다. 조합이 주장한 17가지 해지 사유(리베이트 수수, 이중계약 등) 역시 증거 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결국 대행사의 지위가 유지된다고 판결했다.그러나 원심(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핵심은 ‘불법 리베이트 9천만원’이었다. 조사결과, 원고(업무대행사)의 직원이 홍보관 건립공사 과정에서 공사비를 부풀려 9천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입증되었다.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①위임계약에서 민법과 다른 해지 사유를 정했다면 원칙적으로 그 약정에 의해서만 해지할 수 있다(약정해지의 원칙), ②그러나 약정 사유가 없더라도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로 인해 계약의 기초인 신뢰 관계가 파탄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신뢰관계 파탄의 예외)라는 중요한 법리를 설시했다.재판부는 업무대행사 직원의 리베이트 수수를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으로 보았고, 이로 인해 조합과의 신뢰 관계가 완전히 무너졌으므로 계약 조건에 없는 사유라도 해지는 적법하다고 판단했다.계약이 해지됨에 따라 정산 문제도 불거졌다. 원고는 사업계획승인까지 완료했으므로 전체 수수료의 80%를 요구했다. 또한 원고는 수수료에 부가가치세 10%를 더해 청구했으나, 제1심은 “별도의 부가세 지급 약정이 없다면 수수료에 포함된 것으로 본다”며 이를 배척했다.그러나 상급심은 최종적으로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금액의 80%를 기준으로 삼았다. 조합은 대행사 직원이 챙긴 리베이트 9천만원을 손해액으로 보아, 대행사에 줄 수수료에서 이 금액을 상계(차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대행사는 청구한 금액 중 리베이트 상당액과 기지급액 등을 제외한 금액만을 인정받게 됐다.본 판결은 지역주택조합 분쟁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첫째, 계약서는 방패가 되지만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업무대행사는 해지 절차를 까다롭게 설정하여 지위를 보장받으려 하지만, ‘부정행위’가 개입되는 순간 법원은 계약서의 문구보다 ‘관계의 본질(신뢰)’을 우선시한다.둘째, 부가가치세 및 지연손해금 약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오가는 대행 수수료에서 부가세 포함 여부나 이행기 도래 시점(청구 후 30일 등)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으면 긴 법정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이동철 대표변호사 / 법무법인 동아